건강검진의 도전과제,
장 세척제와의 만남
병원을 개업하기 전,
30대 중반에 큰 결심을 하고 건강검진을 받았다.
건강검진이 그토록 고가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.
기본검사에 몇 가지 항목을 추가하면
100만 원이 훨씬 넘어 고민했지만,
새로운 인생 단계를 시작하기 전에
제대로 된 신체 상태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.
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까지 모두 받았는데,
결과를 설명해 주셨던 의사선생님께서는
"40대쯤 되어서 대장 내시경을
한 번 더 받으시면 됩니다."
라고 조언해 주셨다.
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
작년부터 체력이 다소 저하되고
몸이 무거운 느낌이 들어 운동량을 늘렸지만,
컨디션이 아주 좋아지지는 않아
몸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.
역시 한 번 제대로 점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
올해 다시 건강검진을 신청했다.
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비용에 다소 놀랐지만
'한 번 전체적으로 점검을 받아보자"라는
마음으로 검사를 예약했다.
예약을 마치고 나오는데 직원이 나에게
큰 박스 하나를 건네주었다.
그 순간 6년 전의 불편했던 기억이
생생하게 떠올랐다.
바로 장 세척제의 재등장이었다.
대장 내시경의 필수 동반자
장 세척제
대장 내시경은 특성상
장에 내용물이 있으면
장벽을 관찰하기가 어렵다.
때문에,
장을 완전히 비우는 과정이 필수적인데
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장 세척제이다.
나는 이번 장 내시경에서
'내시쿨산'이라는 약을 사용했는데,
대부분의 장 세척제는 원리와 용법이 유사하다.
병원에서는 보통 검진 하루 전날 저녁이나
당일 새벽에 복용하라고 안내한다.
내 경우는 전날 오후 6시,
그리고 다음 날 새벽 4시에 각각
1.5리터의 물에 가루 형태의 장 세척제를
잘 섞어 섭취해야 했다.
맛은 약간 불쾌한 스포츠음료와 비슷하다.
500ml 정도는 무난하게 마실 수 있지만
1리터가 넘는 양을 한 번에 마시는 것은
상당히 어려운 일이다.
사실 병원에서 알약 형태의 장 세척제와
기존 장 세척제 중 선택하라고 했다.
알약 형태는 5만 원이 추가된다고 해서
기존 방식을 선택했는데,
새벽 4시에 일어나 차가운 액체를 마시며
그 선택을 재고하게 되었다.
"아마도 5만 원을 더 썼어야 했을까..."
장 세척제의 과학,
완벽한 정화를 위한 화학적 원리
장 세척제는 어떻게 작동할까?
간단히 말해 장 내에 수분이 충분히 유입되어
내용물을 희석하고 배출하는 원리이다.
마치 물을 이용해 배관을 세척하는 것과
유사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.
폴리에틸렌 글리콜(PEG)은
모든 장 세척제의 주요 성분인데
고분자 화합물로 비흡수성* 삼투성
완화제**(osmotic laxative)로 분류된다.
*비흡수성 : 분자량이 큰 고분자 화합물로
장내에서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.
**삼투성 완화제 : 장내 수분 정체를 일으켜
장 팽창, 장운동을 증가시킨다.
PEG는 경구로 투여되면
소화되지 않고 흡수되지 않는 채로
위장관을 통과한다.
장에 도달한 PEG 분자들은
친수성이 탁월한 특성이 있어서
장내에 수분을 머금게 만드는데
수분이 장내에 유지되면,
장 내용물의 부피가 확장되고
점도는 현저히 낮아진다.
이 과정에서 장벽에 위치한
신장 수용체들이 자극을 받게 되고,
이는 연쇄적으로
장의 연동 운동을 활성화시킨다.
결과적으로 액체에 가까워진 내용물은
장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게 되며
장 점막에 부착되어 있던
모든 점액, 세균, 소화되지 않은
음식물 입자들까지 함께 씻어내게 된다.
이 전체 과정은 마치
정밀한 배관 청소 시스템과도 같아서
장 전체를 철저히 정화함으로써
내시경 검사에 이상적인 시야 확보를
할 수 있게 해준다.
완벽한 장 세척을 위한
식이 요령
장 세척제를 아무리 올바르게 복용해도
전날 식사를 주의하지 않으면
효과가 감소할 수 있다.
내시경 전날은 섬유질이 적고
소화가 용이한 음식만 섭취해야 한다.
흰죽, 삶은 감자, 두부, 흰 빵 정도가 적합하고
잡곡밥, 나물, 씨 있는 과일, 김치, 미역 같은
해조류는 피해야 한다.
내 검사는 아침 9시였기 때문에
출발 전에 소용량 액상 장 세척제를
추가로 복용했다.
이건 진한 농축액인데,
역시나 충분한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.
사실 장 세척의 핵심은
장 세척제의 형태와 관계없이
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다.
수분이 많을수록 장이 더 깨끗해진다는
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원리이다.
모든 노력 뒤에는 보람이 있다.
건강검진이 완료된 후
의사 선생님께서는 장 영상을 보며
제거한 용종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.
선명하게 촬영된 장내 영상을 보니,
그 모든 불편했던 장 세척 과정이
의미 있었음을 실감했다.
앞으로 또 몇 년 후에 이 과정을
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긴 했지만,
건강을 위한 필요한 투자라고 여기기로 했다.
아낀 5만 원으로 그날 저녁에
치킨 두 마리를 시켜 먹었다.
매우 만족스러웠지만,
다음 번 검진에는
아마도 5만 원을 추가하여 알약 형태의
장 세척제를 선택할지
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 같다.